• 작성자 : 코난 • 등록일 : 2016년 5월 28일 토요일 • 조회수 : 8,221 •
디지털 케이블은 단지 전 세계적으로 규정한 표준적인 제원에 만족하면 어떤 음질적인 변이나 음질 향상이 있을 수 없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USB 케이블이 그랬고 현재 LAN 케이블에 따른 음질 변화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재 디지털 코엑셜, AES/EBU, 옵티컬 케이블의 수준에 따른 음질의 차등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보편타당한 과학적 근거와 함께 다수 대중의 수긍을 얻었다.
"킴버 오키드 & D60"
오래 전 CDT 와 DAC를 운용하던 중 음질을 상승시킬 요소가 무엇일 있을까 관찰하다가 생각이 미친 곳이 디지털 케이블이었다. 오디오넷 구형 트랜스포트와 코드 DAC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RCA-BNC 단자로 터미네이션된 케이블을 구하던 중 마주친 것이 킴버 D60이었고 나는 그 케이블을 처음 경험했을 때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킴버 오키드와 함께 킴버 D60는 내가 규정하고 있던 디지털 케이블의 범주와 규범을 산산 조각낸 케이블이었다. 무참히 깨져버린 선입견은 바닥에 내팽개치고 한동안 여러 디지털 케이블을 비청해가며 음질적 차이를 즐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 Black Cat Cable Digit 75
"크리스 소모비고의 Black Cat"
사실 킴버에서 출시한 오키드와 D60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은 원래 크리스 소모비고(Chris Sommovigo)라는 천재적 인물이다. 디지털 전송에 있어 해박한 지식과 독창적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그는 일루미나티(Illuminati)라는 메이커를 설립하고 완벽히 정확하게 75옴 규격을 갖는 디지털 케이블을 만들었다. 이것은 1990년대 초중반 즈음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한 곳에 오래 머물며 동일한 메이커를 운영하는 것에 실증을 잘 느끼는 타입인지 일루미나티를 킴버에 매각하고 떠난다. 그리고 그는 1990년대 말 스테레오복스로 돌아왔고 매우 정교한 스펙과 기준을 가지고 여러 걸작 케이블을 만들어냈다. 당시 해외에서 소문을 듣고 직접 구입해 사용했던 XV 시리즈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가격을 뛰어넘는 탁월한 성능과 BNC-RCA 의 특이한 커넥터 인터페이스도 편리해 한동안 즐겁게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 Black Cat Cable Digit 75
지금 소개하는 블랙 캣 케이블은 바로 디지털 케이블의 신화적 인물 크리스 소모비고가 현재 운영중인 케이블 메이커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현재 가족들과 함께 일본에 살고 있다는 사실. 아무튼 이번에 입수한 케이블은 크리스 소모비고가 새롭게 일본에 둥지를 틀고 런칭한 블랙캣 케이블의 두 개 케이블이다. 본래 디지털 전송에 있어 전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인 그이기에 블랙캣 케이블의 Digit75 와 TRØN 이 리뷰 대상으로 낙점 받았다.
▲ Black Cat Cable TRØN
"셋업"
케이블 테스트의 경우 테스트 방식이 때로는 결과의 향방을 구분짓기도 한다. 이번 테스트는 동일한 시스템을 구성하고 테스트 곡을 몇 곡 정한 후 각 곡마다 A, B 케이블을 교체하면서 곡에 따라 음질적인 특성 변화를 살폈다.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각 케이블의 도체나 지오메트리 등에 대한 정보는 애초에 알아보지 않고 온전히 리스닝 테스트에만 집중했다.
▲ Black Cat Cable TRØN
사용한 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오렌더와 웨이버사 DAC 사이에 두 가지 코엑셜 타입(BNC->RCA) 디지털 케이블을 연결해 테스트했다.
* 스피커 : 아발론 Transcendent
* 앰프 : 웨이버사 V 프리/파워앰프
* 소스기기 : 오렌더 N10 & 웨이버사 V DAC
"리스닝 테스트"
1. Digit 75
Digit75 와 TRØN 는 음질적으로 공통분모를 가지면서도 매우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가진다. 우선 Digit75를 연결한 후 처음 받게 되는 인상은 매우 강력한 오디오적 쾌감이다. 킴버 오키드와 D60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웅산 - I Love you
I love you
예를 들어 웅산의 ‘I love you’를 들어보면 골격, 음의 음영 대비는 물론 경계가 뚜렷하고 심지가 깊은 소리다. 토널 밸런스는 약간 밝은 편으로 시스템 사운드의 조도가 밝아지며 무대가 환해지는 인상이다. 때문에 웅산의 입술의 끈적임까지 세밀하게 포착될 정도며 피아노 잔향은 은은하고 자연스럽게 공간을 파고든다.
보컬의 호흡이 크게 느껴지고 높은 옥타브에서 롤오프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초고역까지 시원하게 탁 트인 광대역과 개방감이 압권이다. 해상력은 탑 클래스 수준으로 더 이상 올라간다면 자칫 피곤해질 수도 있다. 살집이 크고 육중한 느낌에 어두운 스타일과는 정 반대편에 서 있어 표면 입자가 고우면서 견고하며 잔향이 매우 맑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Arild Andersen - Bryllupsmarsj
Kristin Lavransdatter
아릴드 안데르센의 [Kristin Lavransdatter] 앨범 중 ‘Bryllupsmarsj’을 들어보면 저역 구간의 표정을 살펴본다. 낮은 저역까지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파이프 오르간 사운드는 매우 선명하다. 저역 옥타브의 움직임, 컨트라스트 표현이 선명하며 바닥까지 힘 있게 뻗으면서 해상력을 거의 잃지 않는다.
섹소폰은 마치 하늘이 열리듯 높게 뻗어나가며 뿌옇게 뭉개지는 모습도 없이 맑고 화창한 요즘 봄 하늘같다. 고해상도의 쾌감이 매우 크게 다가온다.
Klaus Tennstedt - Mahler Sym.NO.8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기존에 사용하던 타사 디지털 케이블을 시청하다가 Digit75 로 넘어오면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는 스테이징 규모와 임장감이다. 텐슈테트의 말러 8번 ‘천인교향곡’ 1악장 등 대편성 교향곡에서 무대는 매우 빠르고 좌/우로 크게 확장된 모습이 확연하다. 악기의 음색은 물론 합창에서 전/후 무대의 깊이와 레이어링이 예리하게 구분되어 매우 커다하고 입체적인 무대를 느낄 수 있다.
묵직하고 차분한 스타일은 아니며 매우 명징하고 타이트하면서 기민한 반응을 보인다. 마이크로, 매크로 다이내믹스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소리. 무척 활달하고 선명하게 쾌활한 소리임이 전체적인 특성으로 포착된다.
2. TRØN
Digit75와 TRØN의 교차 비교는 여러 번의 케이블 교체에 따른 피로도보다 음질 차이에 따른 흥미 덕분에 시종일관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우선 TRØN 은 고가 하이엔드 케이블과 중급 케이블을 구분 지을 수 있는 특징을 바로 암시한다. 적막한 배경과 기품 있는 소리 입자, 밸런스에서 TRØN이 상급임을 알 수 있다.
웅산 - I Love you
I love you
예를 들어 웅산 ‘I love you’에서 피아노 타건의 배음은 매우 미세한 입자와 온건한 기품을 가지고 있어 한마디로 음악적이다. 강건하고 심도 깊은 소리임에는 분명하지만 좀 더 묵직하고 토널 밸런스가 낮아 안정감과 기품이 느껴진다. 보컬의 음상 위치는 물론 그 음상의 크기까지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선명하고 뚜렷한 포커싱을 선사해준다.
보컬에 에너지감이 무겁게 실려 있어 꿈틀거리는 힘이 깊게 느껴진다. 전/후 원근감과 다이내믹스 표현이 더 폭넓어 추진력이 실려 있고 실체감이 더욱 상승한 느낌이다.
Arild Andersen - Bryllupsmarsj
Kristin Lavransdatter
아릴드 안데르센의 [Kristin Lavransdatter] 앨범 중 ‘Bryllupsmarsj’에서는 Digit75 연결시보다 무대가 몇 뼘은 더 뒤로 빠져 시쳇말로 전망이 뛰어난 원근감을 표현해준다. 전체적인 토널 밸런스 덕분에 묵직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음악을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 파이프 오르간의 은은하면서 깊고 나지막이 울리는 저역은 마치 적막한 배경 위에 최초로 그림을 그려 물들이는 듯하다. 마치 수묵화처럼 자연스러운 컨트라스트 표현이 돋보이며 음영 대비가 폭넓게 표현된다. 섹소폰은 리퀴드한 에너지가 가득 실려 있어 굽이쳐 흐르는 강물처럼 힘 있게 뻗어나간다. 심도와 펀치력, 밀도감이 상승해나가다가 가장 높은 옥타브, 하이라트 부근에서는 마치 갓 잡아 올린 활어처럼 파닥거린다.
Klaus Tennstedt - Mahler Sym.NO.8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텐슈테트의 말러 8번 ‘천인교향곡’ 1악장에서 무대의 펼쳐짐은 Digit75처럼 스케일이 크고 막힘이 없다. 그러나 합창 부근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저 깊은 곳에서 눈앞까지 층층이 느껴지는 레이어링과 더 넓어진 원근감이다. 피치는 더욱 낮으며 깊이와 심도는 더욱 상승해 일종의 권위감이 느껴지는 소리다.
무대는 뒤로 쭉 빠지며 클라이맥스 부근에서도 소란스러운 면이 없고 밀도 높게 제어된 소리를 들려준다. 팀파니 헤드의 울림 또한 더욱 묵직하고 낮고 깊게 깔리며 나를 향해 달려 나오지만 전혀 공격적이지 않은 채 생동감이 충분히 실려 있다.
테스트가 끝난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TRØN과 Digit75의 가격 차이는 매우 크다. TRØN은 Digit75 의 무려 세배 이상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다. 물론 TRØN의 성능이 상급에 어울리는 품격과 클래식이나 재즈 등 어쿠스틱 악기 표현에 좀 더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이엔드 오디오는 ‘Cost No Object’이지 ‘Cost Performance’를 추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전자는 TRØN을, 후자는 Digit75를 선택하면 합리적일 것이다.
"총평"
포토 저널리즘의 신화 로버트 카파는 말했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피사체에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라고. 하이파이 시스템에서 케이블은 충분히 깊게 다가서야만 보이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 존재를 얼마만큼 이해하면서 세부적으로 관찰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케이블은 메인 기능을 담당하는 컴포넌트를 연결해주는 역할 뿐이지만 결국 시스템의 만족도를 결정짓는다. 블랙캣 디지털 케이블은 한낱 케이블이 오디오 시스템에 있어서 결정적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고도 남는다. 최근 몇 년간 테스트해본 디지털 동축 케이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케이블이다.